어느 흐린 날, 두 개의 다리 사이를 걷다

 

국내 최고의 미항(美港), 동양의 나폴리, 예술의 도시 등등 통영을 수식하는 말들은 참 많다. 모두 통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에 대해 초점이 맞춰져 있는 말들. 하지만 정작 통영을 오가는 수 많은 관광객들 중 그 진짜 의미를 체감하고 돌아가는 숫자는 얼마나 될까. 케이블카나 루지, 북적이는 시장, 해안도로 드라이브로는 알 수 없는 통영의 생생한 얼굴은, 오직 걷는 동안에만 만날 수 있다.

어느 흐린 날,
두 개의 다리 사이를 걷다

 

국내 최고의 미항(美港), 동양의 나폴리, 예술의 도시 등등 통영을 수식하는 말들은 참 많다. 모두 통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에 대해 초점이 맞춰져 있는 말들. 하지만 정작 통영을 오가는 수 많은 관광객들 중 그 진짜 의미를 체감하고 돌아가는 숫자는 얼마나 될까. 케이블카나 루지, 북적이는 시장, 해안도로 드라이브로는 알 수 없는 통영의 생생한 얼굴은, 오직 걷는 동안에만 만날 수 있다.

땅과 바다, 어슴푸레 한 그 중간 어디쯤

통영시의 캐치프레이즈는 ‘바다의 땅’. 전라남도 신안군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섬을 소유하고 있는 지자체인데다 도시 대부분이 바다와 접하고 있기에, 썩 잘 어울리는 별명이다. 오래 전부터 어업이 성했던 터라 배가 많았고 그 배들의 접안과 통행을 위해 여러 편의시설이 바다 쪽으로 몰려 있다. 당연히 사람들의 삶도 바다와 밀접할 수밖에 없었고, 다른 해안 도시들보다 넘실거리는 물결을 보는 게 훨씬 쉬운 일이다.

재미있는 것은, 그렇게 바다와 함께하고 있는 도시임에도 특유의 짠내나 비린내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 이에 대해 통영 사람들은 “바다가 깨끗해서 그렇다”며 아무렇지도 않게 이유를 설명하면서도, 내심 자랑스러운 기색을 숨기지 않는다. 그만큼 통영 사람들은 통영바다에 대한 자부심이 남다르다. 그런 바다를 가까이서 만날 수 있는 곳은 바로 통영 운하. 그리고 그 위와 아래를 가로지르는 두 개의 다리, 그리고 하나의 터널이다.

바다 아래에도 길은 있다

통영 사람들은 바다와 함께 걷고 차를 달리고 그 밑으로 혹은 위로 건너다니는 일이 사사롭다. 밑으로? 그렇다. 통영에는 바다 밑을 가로지르는 해저터널이 있다. 다만 너무 섣부른 상상은 하지 말자. 해저터널 한가운데에 서 있으면 터널의 천장으로 물고기들이 헤엄치는 모습을 본다든지 하는, 지극히 아쿠아리움스러운 상상 말이다.
케이블카와 루지 등 다양한 즐길거리가 있는 미륵도의 미수동과 통영 본토의 당동을 잇는 해저터널 완공된 건 1932년. 1927년에 착공했으니 5년에 걸친 공사 끝에 완공된 셈이다. 공사의 주체는 당연히, 당시 한반도를 지배하고 있던 일본이었다. 미륵도로의 이동을 위한 목적으로 지어졌으니 장식 같은 것이라곤 전무할 수밖에. 그나마 요즘은 통영의 관광정보를 파악할 수 있는 안내판이 부착돼 작으나마 볼거리가 생긴 셈이다.

하지만 통영 사람들에게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들에게 해저터널은 그저 서호시장으로 찬거리를 사러가거나 등교를 하거나 귀가할 때 일상적으로 지나는 생활 속의 장소일 뿐이니까. 다만 뙤약볕이 내리쬐는 한여름에는 동네 사람들의 시원한 피서지가 되어주기도 한다. 미수동에서 출발해 당동 쪽의 해저터널 출입구로 나오게 되면, 일제시대에 지어진 적산가옥이 아직도 그 모습 그대로 남아 있는 것도 발견할 수 있다. 여전히 누군가 살고 있다는 증거로 집 앞에는 꽃들이 소담스럽게 피어있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시대가 바뀌어도 삶은 지속된다는 생각이 드는 장면이다.

일상적으로 흐르는 어떤 것들

당동에 이르렀다면, 일방통행로를 따라 충무교 쪽으로 천천히 걸어가 보자.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일이 많다 보니, 걸어서 다리를 건너볼 기회가 흔치 않을 것이다. 아니, 그런 일을 기회라 생각하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통영에서라면 꼭 한 번 경험해볼 만한 일이다. 게다가 1964년 완공된 충무교는, 그리 길지도 않다. 게다가 폭이 좁다 보니 오가는 차들도 속도가 빠르지 않다. 그런 다리 한가운데서 바라보는 통영 시내 방면의, 다른 어느 해안도시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아기자기함으로 가득하다. 해안을 따라 서 있는 아파트들은 그리 높지 않고 저 멀리 보이는 여객선 터미널과 문화예술회관 역시 한손에 들어올 만큼 올망졸망하다. 그런 풍경 속에 빨간 화살표처럼 보이는 작은 등대를 향해 내려가다 보면, 통영사람들이 바다와 얼마나 친숙한지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등대 주위에는 동네 사람으로 보이는 낚시꾼들이, 지나가는 배에는 관심이 없다는 듯 무심한 뒷모습으로 의자에 앉아 있고 여름이 오길 기다리는 데에 지친 아이들은 성급하게 바다에 몸을 담그고 있다. 주위에는 통영사람들이 단골로 드나드는 횟집들이 즐비하고 그 옆으로 시내버스들이 아무렇지 않게 지난다. 싱싱해 보이기 이를 데 없는 참돔, 돌돔, 능성어 같은 물고기들이 그런 모습을 수족관 안에서 말없이 바라보고 있다. 그저 한가로운 동네 풍경일 뿐이다.

푸른 다리 위에 서다

충무교에서 도보로 약 15분 거리에 위치한 통영대교는 1998년 완공됐다. 폭 20m 총길이 591m로, 충무교와는 비교할 수도 없이 큰 다리다. 통영사람들 역시 이곳을 차를 타고 건너는 게 일반적이지만, 일부러 걷는 경우도 꽤 많다. 왕복 약 1km짜리 조깅코스인데다 그 풍경도 꽤 좋은 편이기 때문. 차가 많이 오가는 것은 그리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이어폰을 깊게 꽂으면 소음이 들리지 않고 먼 바다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이 매연이 사람에게 닿기 전에 말끔히 날려버리는 덕분이다. 그리고 오후 서너 시쯤에는 인근에서 조업을 하던 배들이 너울거리는 물결을 만들며 그 파란 다리 밑을 지나는 풍경도 꽤나 낭만적이다. 당동부터 통영대교까지 이르는 길에 아무렇지도 않게 피어 진한 향기를 머금고 있는 흰색 치자꽃만큼이나 말이다.

통영은 햇살이 무척이나 뜨거운 곳이다. 6월 이후부터 10월 중순까지는 햇볕에 장시간 노출되는 일은 가급적 삼가야 한다. 그래서 통영을 걷는 건 될 수 있으면 흐린 날을 선택하자. 바닷바람이지만 끈적이지 않고 꽤 선선하기까지 하다. 비록 눈부시도록 하얀 풍경 혹은 시리도록 푸른 바다를 만날 수는 없겠지만, 더 오랜 시간 통영의 한가로움과 동행할 수 있을 테니까.

글ㆍ사진 정환정 작가
ⓒdgram.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게시물에 사용한 사진의 저작권은 촬영자가 보유하고 있으며, 무단 사용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The copyright of the photo used in the posting is held by the photographer, and it is prohibited to use it without permission.

2개의 댓글

  1. 종종 통영을 가는데, 케이블카나 루지, 바닷가... 이런곳만 들렀었는데~~ 이런 숨은 장소들이 있었네요. 특히 바다밑에 길이 있었다니~~정말 놀랍네요. 이렇게 좋은 정보와 사진들을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꼭 가서 알려주신 곳을 직접 느껴봐야 되겠네요. ^^~

댓글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