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산맥』이 솟아난 곳

요즘의 20대들에게 대하소설이라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지 가끔 궁금할 때가 있다. 아니, 거창하게 의미라는 단어를 쓸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저 그들이 총 10권 이상으로 구성된 그 긴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 드는지 궁금해진다는 뜻이니까. 지금의 30대 후반까지는 『토지』와 『태백산맥』과 같은 대하소설을 읽는 게 그리 특별한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회의 변화가 빨라지면서 모든 것을 대하는 호흡 역시 빨라지기 시작했고, 글을 읽는 것도 그 범주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 일이 되었다. 그래서 벌교를 이야기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태백산맥』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잠시 망설이게 된다.

『태백산맥』은 조정래 작가가 1983년부터 1989년에 걸쳐 연재했던 대하소설. 총 10권의 책으로 묶어 출판되었는데, 그 공간적 배경 중 가장 중요한 곳이 바로 벌교다. 시대적 배경은, 해방 이후인 1948년부터 1953년까지인 5년. 한반도의 근현대사 중 가장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던 때가 바로 이때였다. 갑작스러운 일본의 패망과 그 후 주도권을 잡기 위한 좌우 정치세력의 대립, 수탈당했던 농지를 되찾기 위한 농민들의 투쟁과 이를 억압하려던 지주 혹은 권력자들, 그들의 틈바구니에서 어찌 되었든 목숨을 연명해야 했던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복잡하게 연결돼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주가 되는 것은 지리산 자락에서 활동하던 빨치산들에 대한 것이었다.

너무나 역사적인 공간 벌교, 그리고 태백산맥 문학관

이런 이야기의 배경이 벌교인 데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작가 자신의 고향이 벌교와 멀지 않은 순천시 승주읍이라는 점과, 벌교가 일제 시대 당시 일본이 수탈을 목적으로 개발한 곳이기에 해방 이후에도 일제가 남기고 간 갈등으로 인한 좌우 대립이 극심했던 곳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태백산맥』에 등장하는 벌교에서의 끔찍한 사건들은 실제 그곳에서 일어난 일이기도 했다. 대부분은 당시의 우익들에 의해 벌어진 일들이었다. 그래서 『태백산맥』 연재 당시 그리고 단행본 출간 당시 작가는 수 많은 협박에 시달려야 했다. 비단 익명의 누군가로부터의 협박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국가권력마저 그의 창작물에 대해 시비를 가리려 들었다.

그런 환경에서도 작가는 글 쓰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완성된 육필 원고는 자신의 키를 훌쩍 넘을 만큼 높이 쌓였다. 거의 대부분의 문서들이 전산화되어 그 양을 가늠할 때 byte와 같은 전자식 단위를 쓰는 요즘 시각으로 보자면 『태백산맥』의 원본 원고의 양은 너무나 비현실적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태백산맥 문학관을 방문하게 된다면, 지금까지 간략하게 설명했던 혹은 묘사했던 이야기들이 모두 사실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문학관 근처에는 소설 속 주요 인물들이 살았던 집들을 복원해 놓은 곳도 있으니 꼭 한 번 들러보도록 하자. 쉽지는 않겠지만, 책을 읽고 간다며 그 감흥은 더욱 남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여전히 혼재해 있는 공간

벌교는 그리 넓지 않기에 걷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나절 일정으로 도보 여행도 가능한 곳. 하지만 뙤약볕은 가급적 피하는 것이 좋다. 그래서 여름 햇살을 피하고 싶은 여행자들은 보성여관을 기억해 놓는 게 좋다. 이 역시 『태백산맥』에 등장하는 곳으로, 실제 일제 강점기 때 지어져 지금까지 보존된 건축물이다. 다만 현재는 2층 다다미방을 제외하면 문화공간으로 활용하고 있어 누구나 쉽게 이용할 수 있다. 그리고 이곳에서 벌교가 가진 역사적 의미에 대해서도 간략하게나마 공부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곳에서 가장 큰 관심을 끄는 곳은 아무래도 다다미방일 수밖에 없다. 일본 전통 바닥재인 다다미가 깔린 이곳은, 우익 청년단이 실제 거주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커다란 방에 칸칸이 종이문을 달아 구획을 구분하는 것 역시 일본식 실내 양식 그대로의 모습. 그런 곳에 잠시 앉아 있노라면 약 70년 동안 흐른 시간의 속도가, 다른 어느 나라의 그것보다 훨씬 빠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정말 많은 것이 바뀌었으니까. 그래서 이런 다다미방쯤이야, 여행을 가지 않고도 일본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핫플’일지도 모르니까.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왜 많은 중년 이상의 사람들이 “나 때는 말이야”로 시작되는 “라떼 주문”을 이어가는지 조금 이해가 될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지금의 2, 30대들 역시 “라떼 주문”을 입에 담게 되는 날이 올 것 같기도 하다. 그들의 복잡하고 고단했던 시간 역시 과거 못지않게 빠르게 흘러 누군가에게는 별 흥미없는 옛날 얘기가 될 테니까. 하지만 누군가는 기억하고 기록할 것이다. 그럼으로써 그 시대의 의미를 더 많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을 테고. 벌교에서 있었던 그 처절한 일들처럼 말이다.

눈으로 볼 수 없지만 입으로 만날 수 있는 별미

순천과 벌교는 갯벌로 유명한 곳이다. 특히 벌교는 깨끗한 갯벌에서 전국적으로 손꼽히는 꼬막을 생산하고 있다. 하지만 여름이면 어쩔 수 없이 맛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 해서 여름 갯벌에 아무 것도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짱둥어 같은 귀한 식재료를 내어준 덕분에 입맛을 잃지 않을 수 있다. 짱뚱어는 남해안 갯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어류로, 허파 호흡을 하며 갯벌 구멍 속에서 산다. 오염된 곳에서는 살지 못하는 특징이 있기에 식용으로 삼는 데에 주저할 이유가 없다. 뿐인가. 맛도 좋다.

_DSC1256

짱둥어는 탕을 끓여 먹는 게 일반적인데, 추어탕처럼 정작 탕에서는 그 형체를 찾아보기가 힘들다. 하지만 맛만큼은 확실하다. 푸근하고 부드러운 느낌의 국물은 온통 감칠맛으로 가득하다. 벌겋게 끓어오르지만 맵지는 않다. 흰 쌀밥 위에 국물과 푹 삶아진 시래기를 올린 후 한입 가득 넣으면 저절로 “하아” 하는 감탄사가 비집고 나온다. 몇 공기의 밥이라도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도 붙는다. 마침 짱둥어는 여름이 제철이라 하니 과식에 설득력도 더해진다.

이런 연쇄반응을 기대할 수 있는 곳은 벌교 안에도 여러 곳이 있지만, 벌교역에서 멀지 않은 역전식당을 찾자. 가장 유명한 곳으로 손꼽힌다. 다만 2인분 이상부터 주문이 가능하다는 것을 숙지하는 게 좋겠다.

역전식당

전남 보성군 벌교리 625-37
061-857-2073
매일 08:30 ~ 20:00(연중무휴)

눈으로 볼 수 없지만 입으로 만날 수 있는 별미

순천과 벌교는 갯벌로 유명한 곳이다. 특히 벌교는 깨끗한 갯벌에서 전국적으로 손꼽히는 꼬막을 생산하고 있다. 하지만 여름이면 어쩔 수 없이 맛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 해서 여름 갯벌에 아무 것도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짱둥어 같은 귀한 식재료를 내어준 덕분에 입맛을 잃지 않을 수 있다. 짱뚱어는 남해안 갯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어류로, 허파 호흡을 하며 갯벌 구멍 속에서 산다. 오염된 곳에서는 살지 못하는 특징이 있기에 식용으로 삼는 데에 주저할 이유가 없다. 뿐인가. 맛도 좋다.

_DSC1256

짱둥어는 탕을 끓여 먹는 게 일반적인데, 추어탕처럼 정작 탕에서는 그 형체를 찾아보기가 힘들다. 하지만 맛만큼은 확실하다. 푸근하고 부드러운 느낌의 국물은 온통 감칠맛으로 가득하다. 벌겋게 끓어오르지만 맵지는 않다. 흰 쌀밥 위에 국물과 푹 삶아진 시래기를 올린 후 한입 가득 넣으면 저절로 “하아” 하는 감탄사가 비집고 나온다. 몇 공기의 밥이라도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도 붙는다. 마침 짱둥어는 여름이 제철이라 하니 과식에 설득력도 더해진다.

이런 연쇄반응을 기대할 수 있는 곳은 벌교 안에도 여러 곳이 있지만, 벌교역에서 멀지 않은 역전식당을 찾자. 가장 유명한 곳으로 손꼽힌다. 다만 2인분 이상부터 주문이 가능하다는 것을 숙지하는 게 좋겠다.

역전식당

전남 보성군 벌교리 625-37
061-857-2073
매일 08:30 ~ 20:00(연중무휴)

글ㆍ사진 정환정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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